1995년 11월 8일 생
2008년 3월 25일 사망
일생의 반은 뻔질나게 전국을 누볐고, 일생의 반은 쥐죽은 듯 서 있기만 했던 애 낳기 두려워하던 자동자 이젠 잠들다…
모지역 사투리로 ‘애기를 가질지 모르니 조심해라’라는 늬앙스를 물씬 풍기는 모델명 ‘아벨라’
굴러다니던 자동차에서 이젠 폐차장의 고물로,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뒤에는 다른 모양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많은 생각이 난다.
1995년 11월 8일.
스포티지 숏바디를 애타게 기다리던 내가 근 1년을 넘게 기다리다 걍 출퇴근용으로 사자라고 맘먹고 고른 자동차가 사무실 앞으로 왔다.
그 몇 주전 휴일 그냥 대리점에 들어가서 저차 주세요(정말 차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했더니 황당해 하던 영업사원의 얼굴. 자신은 영업한것도 아니고 휴일 당직서면서 차판건 첨이라며 무지 친절히 잘 해주던 직원분.
그 작고 가벼운차를 1.5로 사는 건 오버스펙이라며, 1.3을 권하기도 했지만 최고사양에 붙일건 다 붙이고 사기로 했다. 당시 요찬 최고 사양이라도 CDP가 없었다.
면허증 받아온 첫날 동생차로 밤에 사무실 한번 다녀오면서 동부간선도로에서 졸음운전한 경험으로(나도 미쳤지… 첫 운전에 조는 사람 또 있으려나?) 일부러 수동변속기를 선택해서 샀는데, 변속방법을 몰라서 고장났다며 다시 그 직원을 불러서 운행했을 때 날 보던 그 황당해 하는 얼굴…
구입하자 마자부터 빨간날만 되면 스키장다니고, 출근하다 뜬금없이 강릉도 가고, 당시 집먼 여친 태우러가고, 데이트하느라 돌아다니고, 데려다 주고 집에 오고 하느라 1년만에 30,000km를 훌쩍 넘게 달려주신다.
비오는 날이며 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티코가 이쁘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의 티코와 바꿔타고 다니던 주인을 잘 이해해 주었고,
또 한참은 이 주인이 스포츠 드라이빙에 눈독을 들여서는 맨날 그놈의 엘란 소릴 들으면서 그 높은 차체에 별별 스킬과 쇼를 다 버텨준다.
여행지에서는 침대차로, 출퇴근에는 움직이는 흡연실로, 어떨때는 첼로2대와 바이올린 4대 그리고 사람 6명을 한꺼번에 실고 움직이면서도 한번도 고장나 서지도 않았다.
갑자기 쫄닥 망한 집안 살림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계곡에 고립될 뻔한 사람들을 구하려다 급류에 휘말려 모두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던…
이차로 2번의 사고를 당했지만 모두 경찰관이 빤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 당해 난 암말도 할 필요가 없었던 행운의 차.
하지만 주인의 다리 부상으로 오랜시간을 집앞 맨홀 뚜껑위에서 전봇대처럼 있었고, 주인의 다른 차 SM520에 밀려 또 서 있었고, 주인이 가난해져서 또 서있었고…
이젠 주인이 여행을 간다 해도 대중교통이나 다른 사람의 차를 이용하느라 계속 서 있고, 평일에 계속 서있고… 휴일엔 주인의 음주로 또 서있고…
폐차키로 했다.
13년 가까운 시간을 주인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이차가 이제 폐차 된다.
많은 생각이 든다… 아마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었나보다.
ek..noh on 2008/04/19 at 10:39 said:
글로 써놓으니… 왠지 서글프네요… 진짜 많이 섭섭했겠어요..
아벨 on 2008/04/20 at 04:08 said:
사진을 봐선 폐차용이 아닌듯한데요? 제차보다 깨끗해보입니다.
저와 같은 차가 하나 없어졌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첨 샀을때 놀림 많이 당했죠.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