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떠돌이

Digital Bohemian

2010년 늦은 휴가… 대마도 여행 준비

About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섬으로, 쓰시마시(市)에 속하며 6개읍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
    • 이즈하라 마치[嚴原町]
    • 미쯔시마 마치[美津島町]
    • 도요타마 마치[豊玉町]
    • 미네 마치[峰町]
    • 가미아가타 마치[上縣町]
    • 가미쯔시마 마치[上對馬町]
  • 크게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짐.
    • 아소만[淺茅灣]과 만제키세토[萬關瀨戶:瀨戶는 水路]에 의해 나뉨

방문 목적

  • 대마도 일주, 탐방, 출사, 휴식, 음주

예상 일정

  • 9월 17일 (토요일)
    • 서울 → 부산역(터미널)
    • KTX, 토요코인텔 패키지 이용
  • 9월 18일 (일요일)
    • [08:00] 부산국제여객 터미널 도착
      • 도보 or Texi
      • 탑승 수속 & 면세점 놀이
    • [09:30] 부산국제여객 터미널 → 히타카츠항 출발
    • [11:30] 히타카츠항 도착
      • 입국수속
    • [12:30] 렌트카 인수
    • [12:30] 점심
    • [] 오후 관광
      • 미쓰시마와 이즈하라 일대 관광(?)
      • 최대한 서쪽 해안으로 이동, 일몰(?) 광경 촬영
      • 숙소 근처서 음주 그리고 음주. 저녁 포식 ㅋㅋ
  • 9월 19일 (월요일)
    • 오전 관광
      • 도요타마와 미네 일부 지역 관광
      • 점심 포식
    • 오후 관광
      • 미네 일부와 가미아가타, 가미쓰시마 일부 관광
      • 음주 그리고 음주, 저녁 포식.
  • 9월 20일 (화요일)
    • 오전 관광
      • 도요타마와 미네 일부 지역 관광
      • 가미쓰시마 일부 관광 후 렌트카 반납
      • 점심 포식
    • 오후 관광
      • 미네 일부와 가미아가타, 가미쓰시마 일부 관광
      • 음주 그리고 음주, 저녁 포식.
  • 9월 21일 (수요일)
    • 오전 관광
      • 최대한 동쪽으로 이동, 일출 촬영
    • 버스로 이즈하라 터미널로 이동 (아주 편안한 맘으로 창밖의 풍경 스틸 난사!!!)
    • 이즈하라 터미널 도착 후 점심 식사
      • 탑승 수속 & 면세점 놀이
    • [15:00] 이즈하라 터미널 → 부산국제여객 터미널 출발

준비 상황

  • 2011.8.21 – 대마도일본사무소에 관광안내책자 신청 ( www.tsushima-busan.or.kr )
  • 2011.8.22 – wiki 개설. 자료 수집, 정리 시작
  • 2011.8.25 – 관광안내책자 수령
  • 2011.9.3 – 국제운전면허증 발급
  • 2011.9.5 – 토요일 출발을 일요일 출발로 바꾸고, 2박 3일 일정을 3박 4일 일정으로 변경. 계획 변경
  • 2011.9.9 – 여행사 입금 완료!!!
  • 2011.9.12 – D300s 구입!!!!

결정해야 할 사항

  • 하나, 하나 챙기기
    • 일정(출발일, 도착일) 확정 – OK
    • 여행지 선정(인근, 일정 내에 여유있게 소화 할 수 있는 곳), 숙소 선정
    • 도움 받을 방법(일본에 친지 있는 사람 등 확보)
    • 렌트관련 (지도보는 법, 내지는 주유하는 법, 좌우바뀜으로 사고 안내는 법 등…)

관광지 – 이즈하라마치[嚴原町]

  • 쓰쓰자키
    • 쓰시마 최남단에 위치한 곶(갑)으로,대한해협에서 쓰시마해협으로 돌아들어 오는 곳에 돌출되어 있다. 거친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암초들 그리고 바다 저편의 새 하얀 등대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이 주변은 대한해협과 쓰시마 해협의 경계에 해당하며 해류가 빨라 예로부터 거친 수로(水路)로 유명하다. 쓰시마난류를 타고 북상하는 선박들에게는 항해 위치를 파악하기에 용이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쓰시마 난류의 분기점으로 해류가 빨라 쓰시마의 최북단과 더불어 항해하기 어려운 난코스이기도 하다. 1909년 항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곶의 앞바다에 등대를 건설하였으며 현재의 20m높이의 등대는 1987년 새롭게 세워졌다. 해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어종이 풍부하고 성게, 소라, 전복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방어도 많이 잡힌다.
    • 하대마 관광의 백미이나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하므로 아쉬움이 남는다.
  • 가미자카(上見坂)공원
    • 표고 385m의 전망대로, 일본을 대표하는 리아스식 해안(육지의 침강으로 생성된 해안)인 아소만이 눈 아래에 펼쳐지며, 멀리 규슈 본토와 한국의 산들이 보이는 국경의 섬 쓰시마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이시야네
    • 섬의 89%가 산림지역으로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던 쓰시마는 식량의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또 예로부터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으며, 대한해협에 면해 있는 서해안 지역은 겨울이 되면 강한 계절풍이 불어 왔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초가지붕과 너와지붕으로는 강풍과 화재로부터 소중한 식량을 지켜낼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농민이 기와로 지붕을 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 이로 인해 쓰시마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평평한 돌(혈석)로 지붕을 이게 되었고, 고상식(高床式: 기둥을 세워 바닥을 지면에서 높이 올려 설치하는 가구 구조)으로 지어 바람과 화재, 그리고 습기에도 강한 형태의 창고를 짓게 된 것이다. 창고 내부는 쌀, 보리 등의 잡곡, 의류 및 각종 생활 도구 등을 구별하여 수납할 수 있도록 구획하였다. 또 창고를 풍수해나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해 본채로부터 떨어진 곳에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건축 형태는 일본에서도 쓰시마 시이네(椎根)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
    • 겨울강풍을 막기 위해 대마도의 시이네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돌지붕 건물로 대마도의 돌문화를 대표한다.
    • 일본에서는 이곳을 제외하고는 보기 힘든 건축물이다.
    • ¥ 80
  • 코모다하마 신사
    •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상륙으로 대마도에 큰 전쟁이 있었다.
    • 1274년 10월, 합포(마산)를 출발한 고려와 몽고의 3만 일본 정벌군은 대마도의 코모다하마 해변으로 상륙한다. 이때 대마도의 1만 병사들은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전원 목숨을 잃었다.
    • 특히 당시 도주는 67세의 노장(老將)이었으며 전쟁 후 목과 몸이 따로 발견되어 그 싸움의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한다. 숨진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코모다하마 신사에서는 전사한 병사들의 위패를 받들고 있으며 매년 11월에 위령재를 지낸다.
    • 동경의 야스쿠니 신사와 함께 일본에서 두 곳 밖에 없는 군인을 모신 신사이다.
  • 다테라야마(龍良山) 원시림
    • 다테라야마는 해발 559m로 원시림은 북쪽 측면 해발 120m에서 산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해발 350m 부근을 경계로 하단은 구실잣밤나무, 상단에는 북가시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상단의 구실잣밤나무 숲은 나무의 높이가 20m, 밑둥의 최대 반경은 1m 에 달한다. 장소에 따라서는 조롱나무도 많이 분포하고있다.
    • 상단의 구실잣밤나무 숲은 습기가 많은 표고 1,500m에서 발달하는 산림으로 북가시나무를 비롯하여 야생 동백나무, 황칠나무, 광나무 등이 생육하고 있으며, 일본인우(쌍떡잎식물, 운향과의 상록관목)도 볼수 있다. 다테라야마 원시림은 저지대에서부터 고지대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있어 귀중한 자연환경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보존 상태와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 붉은배새매관측지
    • 작은 새매의 일종인 붉은배새매는 9월 중순 월동을 위해 한반도에서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는 도중 쓰시마를 거쳐가게 된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전날 한반도에서 건너와 쉬고 있던 붉은배새매 무리가 일제히 여기저기에서 날아 올라 상승기류를 타고 남동방향으로 줄을 지어 사라지는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쇼를 방불케 한다.붉은배새매는 비둘기 정도 크기의 소형 매로 중국 북부를 제외한 동부 지방, 한반도, 러시아 우수리 지방에서 번식하고 있다. 9월 경 한반도에서 쓰시마, 이키를 거쳐 규슈의 서해안을 따라 대만까지 남하하여 월동지인 필리핀과 적도까지 건너 간다.
    • 이즈하라마치의 우치야마(內山) 고개가 붉은배새매의 통과지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89년부터로 많은 해는 9월초에서 한달간 약 35만마리가 건너갔다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 확인된 가장 많은 숫자이다.또한 이 시기는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이동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새호리기, 제비딱새, 두루미도 관찰할 수 있다.봄에서 초여름사이 월동을 끝내고 대륙으로 돌아가는 붉은배새매의 이동은 가을 때와 같이 그 이동 루트가 명확하지 않아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를 걸어본다.
  • 오후나에(お船江) 유적
    • 이즈하라 항의 남쪽 구타(久田)포에 남아있는 옛 에도(江?)시대 쓰시마 번주의 선착장으로, 항해에서 돌아온 배를 격납하거나 수리한 곳이다. 내부에 4곳의 돌출 제방과 5곳의 선거(독,dock)가 있다. 이 유적은 1663년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축제(築堤)의 돌담은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만조 시에는 많은 양의 바닷물로 채워져 대형 선박도 출입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간조 시에는 물이 빠져 하물의 선적 등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정문, 창고, 번주의 휴식처 등도 남아 있어 당시의 웅대한 규모를 엿볼 수 있다.
    • 에도시대 해안에 위치한 번은 이러한 선박 격납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이와 같이 훌륭히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곳은 그 예를 찾기 어렵다. 선사시대부터 에도시대에 결쳐 오랜 기간 동안 대륙과의 통교 시 무역선을 이용한 쓰시마번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이 곳에는 번의 전용 선박을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일정 금액을 받고 일반 서민에게 빌려 주기도 하였다. 나가사키현지정사적이다.
  • 이시야네(石屋根,돌 지붕)
    • 섬의 89%가 산림지역으로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던 쓰시마는 식량의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또 예로부터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으며, 대한해협에 면해 있는 서해안 지역은 겨울이 되면 수십미터의 강한 계절풍이 불어 왔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초가지붕과 너와지붕으로는 강풍과 화재로부터 소중한 식량을 지켜낼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농민이 기와로 지붕을 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 이로 인해 쓰시마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평평한 돌(혈석)로 지붕을 이게 되었고, 고상식(高床式: 기둥을 세워 바닥을 지면에서 높이 올려 설치하는 가구 구조)으로 지어 바람과 화재, 그리고 습기에도 강한 형태의 창고를 짓게 된 것이다. 창고 내부는 쌀, 보리 등의 잡곡, 의류 및 각종 생활 도구 등을 구별하여 수납할 수 있도록 구획하였다. 또 창고를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해 본채로부터 떨어진 곳에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건축 형태는 일본에서도 쓰시마 시이네(椎根)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
  • 이즈하라국제여객터미널
    • 대마도의 2개의 국제선 터미널 중 하나로서 가장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이즈하라에 위치.
  • 武家저택
    • 성 아래의 오래된 거리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저택의 돌담은 옛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일명?덕혜옹주?결혼봉축 기념비)
    • 1912년 5월 25일 조선 제26대 왕(황제) 고종(高宗)과 후궁인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 사이에서 태어났다.
    • 고종이 회갑연에 얻게된 딸로, 여섯 살 때인 1917년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였다. 1919년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하였다.
    • 그러나 1925년 4월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어 일본의 학습원을 마친 뒤, 1930년 봄부터 몽유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친왕(英親王)의 거처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증세는 조발성치매증으로 진단되었고, 이듬해 병세는 좋아졌다.
    • 1931년 5월 쓰시마섬[對馬島]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 결혼해 딸 마사에[正惠]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이후 계속 병상생활을 하다가 1953년 다케유키와 이혼하였다. 하나 있는 딸마저도 결혼에 실패하고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고, 1962년 1월 26일 귀국할 때까지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비극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 한국에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않아 귀국 20년 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에 있는 홍유릉(洪裕陵)에 묻혔다.
    • 현 기념비는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다.
  • 반쇼인(万松院)
    • 에도시대 쓰시마번의 관청이 위치해 있었던 이즈하라의 서쪽 아리아케(有明)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낙엽수림이 뒤덮힌 일대를 포함해「쓰시마번주 소가묘소」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본 3대 묘지 중 한곳이다. 사원은 초대 번주(宗가 19대) 요시토시(義智)의 보리사로써 제2대 번주 요시나리(義成)가 아버지를 기리며 1615년에 창건한 쇼온지(松音寺)를 1622년 요시토시의 법호를 따라 반쇼인으로 개칭한 곳으로, 이곳에 역대 쓰시마번주와 그 일족이 모셔져 있다.
    • 묘지는 햐쿠간기(百雁木)로 불리는 132개의 돌계단을 오른 곳에 마련되어 있다. 이즈하라에 처음으로 관청을 둔 宗가 제10대 사다쿠니와 요시토시 이하 32대까지의 번주와 그 가족의 묘가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상단에는 요시토시 이래의 번주와 그 정부인, 중단에는 측실과 아동, 하단에는 일족 및 소가(宗家)에서 출가한 사람 등이 모셔져 있다. 그 중에서도 대조선무역이 활발하였던 시기의 번주 요시나리(義成)와 요시자네의 묘는 다른 묘에 비해 훨씬 커 쓰시마와 조선의 무역이 얼마나 활발하였던가를 짐작케한다.
    • 쓰시마번은 십만석의 영지를 가진 번(藩)이었으나 웅대한 묘지의 규모는 수십만석의 영지를 가진 번에 버금간다고 한다. 본당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절문은 쓰시마에서 가장 오래된 모모야마(桃山:1568∼1600)양식으로 창건 당시 그대로이며, 도쿠가와(德川) 역대 장군들의 위패 및 조선통신사 관련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햐쿠간키(돌계단)를 오르면 석단과 묘지 옆에 하늘을 찌를 듯한 3그루의 삼나무가 서 있다. 원래는 20그루 이상 있었다고 전해진는데, 이 3그루의 삼나무가 깊고 한적한 숲속을 제압하고 있다. 수령은 분명하지 않으며, 나무 둘레는 약 5.2m~7m, 높이는 35m~40m에 달한다. 1966년에 나가사키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친화은행에서 10분가량 소요
    • 개관시간: 09:00∼18:00
    • 휴관일: 무휴
    • 요금: ¥300
    • 문의전화: 81-920-52-0984
  • 현립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 1978년 12월에 개관하여, 도내의 문화재, 고고 역사자료, 민속자료, 소(宗)家 문고 등 귀중품을 전시하고 있다.
    • 조선통신사 행렬도, 초량 왜관도 등 다양한 유물과 쓰시마 야마네꼬(산고양이), 쓰시마 사슴, 물수리 등 천연기념물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대마도의 포경어업(고래잡이)의 기록이 고스란히 그림으로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어 옛 대마도인들의 생활상을 엿 볼수 있다.
    • 민속자료관 일대에는 ‘조선통신사비’, ‘고려문’, ‘성신지교린비’ 등이 있다.
    • 조선통신사 비
      • 1697~1811(210년)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두었다.
      • 대마도에는 이곳 외에 수많은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조선통신사 일행은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조선의 앞선 문화로 인해 일본인들에겐 하나의 ‘문화적 충격’ 을 가져다 주었고 당시 통신사 일행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를 ‘누에’와 비교할 정도이니 그 광경을 짐작할만하다.
      • 1811년 일본의 역지빙례(易地聘禮) – 외국의 사신은 본국의 중심부로 들이지 않고 그 나라와의 접경지역에서 예를 다함- 정책에 의하여 12차 통신사 일행은 대마도에서 머물다 귀국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통신사의 왕래는 끊기고 말았다. 통신사는 원래 막부 장군의 장군직 계승 등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임무였으나 차츰 국서교환 등의 임무가 주어지게 되었다.
    • 성신지교린비 (誠信之交隣)
      • 아메노모리호슈(1668-1755) 선생이 주창한 ‘성신지교린’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역은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아메노모리호슈 선생은 1689년 쓰시마번에 임관하여 조선과 의 외교를 담당하였고 동문인 아라이 하쿠세키가 도쿠가와 장군을 일본의 국왕으로 표현한 것을 비난한 왕호사건으로 유명하다. 특히 부산 왜관에 와서 3년간 조선어를 공부하고 대마도로 돌아가 1727년 3년 과정의 ‘조선어학교’를 개소할 정도로 조선과 유학을 숭배하였으며 그로 인해 일본 최초로 한글 교습소가 대마도에서 생겨나기도 하였다.
    • 개관시간: 09:00∼17: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요금: 무료
    • 문의전화: 81-920-52-3687
    • www.pref.nagasaki.jp/t_reki
  • 아리아케(有明)
    • 쓰시마의 봉우리(559m)로 불리우며, 만요슈(일본 고대 시집)에서도 읊어진 역사와 낭만이 넘치는 명산. 이즈하라 마치를 둘러싸고 우뚝 솟아있으며 정상에는 넓은 초원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어 하이킹 코스로도 제격이다. 날씨가 좋으면 산 정상에서 이키와 마츠우라의 산들도 만끽할 수 있다. 이즈하라 시내에서 진입하기 때문에 시내에서 숙박할 경우 새벽에 다녀와서 일정을 진행할수 있다. 정상은 넓은 초원으로 펼쳐져 있으며 등산코스는 한낮에도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쓰기목으로 가득 차있다.
  • 수선사(슈젠지, 修善寺), (최익현) 선생 순국비
    • 이즈하라 시내에 위치하여 찾아가기도 쉬우며 특히 순국비가 위치하고 있는 수선사는 백제의 비구니인 법묘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최익현은 쓰시마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 쓰시마에서 감금 3년형을 받게 된 최익현은 1906년 8월 28일 아침 이즈하라로 호송되어 왔다. 2년형을 받은 임병찬과 함께 하치만구신사(八幡宮 神社) 남쪽에 위치한 제사전습소(製??習所)에 수용되었는데, 쓰시마경비대 수용소가 완성되기 전 3개월간 이곳에 구류되었다.
    • 임병찬의 「대마도일기(?馬島日記)」에 의하면 12월 4일 발병의 기록이 보이며 경비대에서는 사람을 붙여 간호하였으나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하였다.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에서 치뤄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슈젠지에 비를 세웠다.
  • 서산사 (김성일 선생 시비, 현소(켄쇼) 스님 동상/석탑)
    • 서산사는 조선통신사가 대마도를 들렀을 때 유하던 장소로서 지금도 그것이 인연이 되어 특이하게도 유스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
    • 대마도 유일의 유스호스텔을 사찰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서산사를 찾아가면 3군데의 볼거리가 있는데 이태안의 건축물과 김성일 선생의 시비(詩碑),그리고 현소스님의 석상이다.
    • 이태안(1611 ~ )
      • 현재의 건축물은 화재로 손실 된 것을 복구한것이나 입구부분의 구조물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조선통신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옛 대조선 외교기관이라 할 수 있다.
    • 학봉 김성일 선생 시비 (鶴奉 金誠一 先生 詩碑)
      • 김성일 선생 1538(중증 33)~1593 (선조 26) 본관은 의성이며 영남의 대 유학자라 일컬어진다.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이다. 조선 선조 대왕이 왜국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황윤길과 함께 통신사로 파견하였다. 돌아와 조정에 보고하기를 필히 왜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는 황윤길의 의견과 반대의견을 보고하여 당시 동인과 서인의 세력 갈등의 상황에서 우위였던 동인 세력인 김성일의 의견이 채택되었다. 같은 동인이었던 유성룡 선생과의 교분이 깊어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선조대왕의 처벌의지에도 유성룡 선생이 적극 변호하였다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초유사로 종군하다 병사하셨다. 서산사 뒤 산 기슭에 원래의 시비가 현소 스님의 부도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으며 경내에 있는 시비는 의성 김씨 문중에서 설립하였다.
    • 현소 스님 석탑
      • 현소 스님은 하카다(博多) 세이후쿠사(聖福寺)에서 승려생활을 시작하였다.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부름을 받고 그의 수하 승려가 되어 1588년(선조21년)부터 조선에 드나들며 자국의 내부사정을 설명하고, 일본과 수호관계를 맺고 통신사를 파견하라고 요청하였다. 1590년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許筬)등의 통신사 일행이 풍신수길의 저의를 살피기 위하여 일본으로 갈 때 동행했으며 , 이듬해 다시 입국하여 조선의 국정을 살피고 토요토미의 명나라 침공을 위한 교섭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1592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가 이끄는 선봉군에 국사(國使)와 역관 자격으로 종군하였다. 이후 임진강을 사이에두고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과 대치할 때 고니시(소서행장)의 제의로 이루어진 ,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이덕형 등과 강화회담에 [야나가와 초신]과 함께 일본의 전시외교 활동에 종사하였다. 서산사 뒤 산기슭에 스님의 부도탑이 안치되어 있고 김성일 선생의 시비도 나란히 서있다.
  • 아유모도시 자연공원(鮎?し自然公園)
    • 아유모도시란말은 은어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 세강은 쓰시마에서 제일 높은 산인 야타테야마(矢立山)와 다테라야마(龍良山)에 둘러싸인 우치야마 분지에서 발원하고 있다. 이 세강 유역을 포함한 다테라야마 원시림의 산기슭 약 26ha가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산속 깊은 곳까지 수량이 풍부하여 은어(아유,鮎)가 많이 거슬러 올라 오는 것으로 유명하나, 세강의 거친 물살로 인해 상류인 우치야마 지역까지는 올라 오지 못한다.
    • 공원 입구의 주차장에는 이시야네(石屋根,돌지붕)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세강 위에 걸쳐 있는 구름다리에서 강을 내려다 보면 계곡 전체가 천연의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웅대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표고 144m의 높이에 마련되어 있는 만남의 광장을 중심으로 세강의 사면에 스포츠 슬라이더, 잔디썰매장, 퍼팅골프장, 캠프장, 삼림욕장 등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 이즈하라의 중심에 위치한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에는 캠프장,스포츠 슬라이더, 골프연습장, 만남의 광장 등이 있어 가족단위로 휴식할 수 있는 레크레이션 장소이다.
  • 티아라 종합쇼핑몰
    • 마트, 식당, 기념품, 100엔숖, 식당 등
    • 2007년 완공된 현대식 건물로 각종 마트(100엔숖, 식당, 장난감가게, 의류, 신발)가 있다. 현지인들과 함께 쇼핑을 하는 아주 저렴한 쇼핑공간이다.
    • 특히 이곳에 하나뿐인 우동집은 제법 맛이있어 관광객들의 인기가 높고, 100엔숖은 다양한 물품이 준비되있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관광지 – 미쯔시마마치[美津島町]

  • 시라타케(白嶽) 산
    • 519m
    • 예부터 쓰시마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 온 영산이다. 해발 519미터의 정상에 서면 360도 조망이 가능하여, 서쪽으로 대한해협, 동쪽으로 쓰시마해협, 눈아래에는 아소만이 펼쳐지며, 맑은 날에는 한국의 섬들도 뚜렷이 보인다. 10월말에서 11월경에는 대륙에서 가고시마로 건너가기위해 시라타케 상공을 통과하는 흑두루미의 무리들의 모습은 보는이들로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산은 석영반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 바로 아래에 북가시나무, 전나무, 섬잣나무, 조롱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수목이 발달해 있다. 전나무, 섬잣나무, 일본인우(쌍떡잎식물, 운향과의 상록관목), 황칠나무는 시라타케가 일본 내 분포 서방 한계지역에 해당한다. 석영반암이 노출되어 있는 산 정상에는 대륙계의 소사나무, 진달래, 들국화 등이 자라고 있다. 이와 같이 한일양국의 식물이 혼재하여 분포하고 있는 곳은 일본에서 시라타케가 유일하며 영산으로 숭배되어 온 터라 보존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여 1923년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또한 시라타케 정상에서는 일본에서도 쓰시마에서만 분포하고 있는 백운취(국화과)도 볼 수 있다.
    • 시라타케 등반은 여러 가지 루트가 있는데 주로 가미자카(上見坂) 등산로(정상까지 2시간 소요)와 미쓰시마마치의 스모(洲藻) 등산로(정상까지 1시간 30분 가량 소요)를 이용한다.
    • 예전엔 고산지대였던 이산은 빽빽한 스기목과 자연목이 잘 어울려져있어 멧돼지, 사슴 등의 개체수가 높고, 한국과 비교하면 결코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행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 산행이 끝나는 지점의 조그마한 폭포, 정상에서의 아찔함 등 산이 갖추어야 할 것은 모두 가지고 있다.
    • 카미자카 -> 시라다케 정상 -> 스모로 하산 하는 코스가 무난하며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
    • 스모 -> 시라다케 정상 -> 스모의 BACK 코스는 경사가 조금 심하며 약 3시간 정도 소요.
    • 스모 -> 시라다케 정상 -> 카미자카 -> 아리아케 들머리 -> 아리아케 정상 -> 아리아케 하산까지는 대략 6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나 카미자카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아리아케 정상에 도달하기 때문에 산행에 큰 무리는 없다. 정상에는 아무런 인공구조물을 설치하지 않았으므로 주의가 요구되며, 정상에는 한번에 대략 10명 정도만 머물 수 있기 때문에 뒷사람을 위하여 자리를 양보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 카미자카전망대
    • 표고 385m의 전망대로, 일본을 대표하는 리아스식 해안(육지의 침강으로 생성된 해안)인 아소만이 눈 아래에 펼쳐지며, 멀리 큐슈 본토와 한국의 산들이 보이는 국경의 섬 대마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가네다성(金田城) 유적(죠야마,城山)
    •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배한 일본군이 일본 국방의 최전방이 된 쓰시마에 신라의 진출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아소만 남부 해안의 죠야마(城山 )에 667년 11월 축조되었다. 표고 256m의 산 정상에서 서쪽 대한해협이 한눈에 들어와 대외 방어 기지로써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 산 정상은 천연 그대로의 절벽이며, 그곳에 성벽의 잔해가 남아 있다. 산 정상을 기점으로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고 3개의 계곡을 감싸 안는, 조선식 산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높이 2∼3m, 길이 5.4㎞의 성벽 흔적이 멀리서도 보인다. 이 형태는 665년 8월에 세워진 치구젠(筑前,후쿠오카현의 북서부)의 오노(大野)성, 히젠(肥前,사가현과 나가사키현)의 기(椽)성과도 동일한 형태이다. 나가사키현 내에서는 최초로 1982년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보존 관리 계획이 책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 해수욕장
    • 쓰시마 도내에서 보기 힘든 인공 모래사장 해수욕장으로 수질이 좋으며, 쓰시마 공항(일본 국내선 취항)과도 근접해 있어, 연간 1만 명의 이용객을 자랑하고 있다. 비치발리볼대회 등 여러 가지 이벤트도 개최되고 있다.
  • 쓰시마 그린파크
    • 쓰시마 특산물인 가리비 모양의 지붕을 얻은 야외 무대, 쓰시마 미니어쳐, 전망대, 테니스 코트, 야구장(다목적광장), 대형 미끄럼틀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야외 잔디밭에서는 매년 친구음악제가 열리고 있으며, 무대 뒤편에는 최근 정비한 인공 모래 해수욕장과 샤워실, 탈의실 등이 완비되어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해수욕장은 수중 방파제가 만들어져있어 파도가 거친날에도 잔잔하여 무리없이 해수욕을 즐길수 있다.
    • 이곳의 샤워실은 지하수를 이용하여 한여름에도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나와 해수욕을 하지 않아도 땀을 식히기 위해 샤워를 해도 좋다.
  • 만제키바시(萬關橋)
    •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뉘어진 쓰시마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또, 다리는 붉은 색깔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아소만의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어 아소만이 바라다 보이는 전경도 멋진 곳이다.
    • 초대 만제키바시 (1900년 완성)?: 옛 일본해군에 의해 건설된 철교로 길이 100m, 폭 5.5m, 높이 약 36m이다.
    • 2대 만제키바시 (1956년 완성)?: 낙도진흥법에 따라 완성된 아치형 철교. 길이 약 81m, 폭 5.5m, 높이 약 30m로 이 다리의 완성으로 버스가 섬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 3대 만제키바시 (1996년 완성)?: 전체 길이 210m, 폭 10m. 섬 전체의 도로망도 정비되어 남북을 연결하는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 졌다.
    • 만제끼 바시의 역사적 의미 – 이 다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쓰시마 해전””의 대승을 가져다준 아주 의미 있는 다리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의 틈바구니에는 조선의 우선권이 중심에 있었다.
    • 러일 전쟁의 기록을 살펴보면 1904년 2월 4일 일본은 대(對)러시아 개전(開戰),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고, 한편 뤼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어 10일 러·일 양국으로부터 선전 포고되었다. 서전에서 일본군은 한국을 제압하고, 한국에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요해 유리한 전략체제를 확립하였다.
    • 4월 하순 한국에 상륙, 북상한 일본 제1군은 5월 초 압록강 연안에서 러시아군과 충돌하여 격파했고, 같은 달 랴오둥반도[遼東半島]에 상륙한 제2군은 난산[南山] ·다롄[大連]을 점령하고 뤼순을 고립시켰다. 다시 6월에는 만주군 일본총사령부를 설치하고 15개 사단을 동원하였다. 8월 랴오양[遼陽] 부근에서 양국군이 첫번째 대규모적인 접전을 벌였고, 10월의 사허후이전투[沙河會戰鬪], 1905년 1월의 헤이거우타이전[黑溝臺戰] 등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고전 끝에 모두 승리하였다.
    • 한편 뤼순의 러시아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을 꾀하였으나, 8월 황해에서 일본 해군의 총공격을 받고 항구 안에 봉쇄당하였다. 뤼순 공략을 맡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제3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203고지 공격으로 많은 손실을 보았지만 1905년 1월 드디어 공략에 성공하였다. 유럽으로부터 지원군을 얻은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과 오야마 이와오[大山嚴]가 이끄는 일본군 25만은 3월에 펑톈[奉天:현 瀋陽]에서 회전(會戰), 러시아군이 패퇴하였으나 일본군도 사상자가 7만에 이르는 큰 손실을 보았다. 한편 러시아는 육전(陸戰)에서의 패배를 해전에서 만회하려고 로제스트벤스키 지휘하의 발틱함대를 회항시켜 5월 27,28일 대한해협에서 대해전을 전개하였으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에 격파되어 전멸하였다.
    •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대마도 아소만에 미리 함정을 대기시켜 발틱함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으며 시간이 촉박한 발틱함대가 최단거리인 쓰시마를 통과하게 되자 이를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 것이다.
  • 아소만
    • 육지의 침강에 의해 생성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대한해협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굴곡미는 쓰시마 자연경관의 백미이며 수많은 무인도와 잔잔한 만곡 수면에 비친 섬들의 모습은 일본 최고로 일컬어질 정도의 절경이다. 바닷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바닥까지 보인다. 고대로부터 조선과 중국 대륙으로 출항하는 배들은 아소만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계절풍이 강해지면 며칠간 순풍을 기다리며 배에 머물러야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630~760년대)에도 쓰시마의 지명이 들어간 시가 42수가 있으며 그 중 아소만을 읊은 시는 18수에 달한다.
    • 에보시타케전망대(烏帽子岳展望所)와 가미자카전망대(上見坂公園)에서 아소만의 무수한 만곡을 천천히 조망할 수 있으며, 유람선과씨카약을 이용하면 아소만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관광지 – 도요타마마치[豊玉町]

  •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
    • 이곳은 대마도의 하롱베이라 일컬어질만한 곳이다.
    • 대마도 내에서 유일하게 360°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여기에서 보는 아소만은 몇 겹의 산과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리아스식 해안 등, 그 웅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대한해협 너머로 한국의 산들도 볼 수 있다. 깎아지른듯한 산과 푸른 바다가 절묘하게 펼쳐진 익곡의 조화는 그야말로 최고의 비경이다.
    • 이곳에서는 한국 휴대폰이 터지기도 하는데 차에서 내려 60M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된다.
    • 날씨가 좋은날에는 거제도가 보이는 대마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전망대이다.
  • 쓰나시마(綱島)
    • 대한해협을 면한 절경지로 해협은 어선들로 붐빈다. 특히 해협으로 지는 석양이 그 웅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남쪽에 위치한 섬의 모습이 고릴라의 얼굴을 닮아 관광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
    • 토요타마 쵸의 상징인 이 신사는 히코호호 데미노미코토와 토요타마 히메를 제사지내는 해궁으로 바다신을 모신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며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과 장보고 장군의 소가(小家)였다는 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 건국신화의 발생지이기도한 이 신사는 바다를 통해 신이 들어온 것으로 묘사되어있다.
    • 본전 정면의 바다속에 서 있는 토리이(신사 문)는 만조시 2m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파도가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한다. 신사 뒤로 돌아가면 토요타마히메(豊玉姬)의 석관묘가 외롭게 서 있고 주위엔 울창한 숲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있다. 인근에 있는 해신신사와 더불어 대마도를 대표하는 신사이며, 해궁신사로는 일본 最古의 신사라할수있다.
    • 이곳의 지명은 토요타마쵸라 불리워지는데 바로 토요타마히메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한다.
    • 대마도에서 아주 귀한 수백년 묵은 海松이 신전 뜰에 심어져있다.
    • 본전 정면의 다섯 개의 도리이(鳥井)중 바다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도리이는 만조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어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한다. 역사적으로 각 시대별 번주나 국가의 원수들이 숭상한 곳이며 쓰시마 도민은 물론 일본 전국 각지에서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고 있다.
    • 해신을 모스고 있는 신사로 5개의 토리이 중 2개가 바닷가에 세워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만조가 됨에 따라 그 모습도 변하는 것도 신기한 곳, 한국어로 설명하는 기계가 있기 때문에 관람하기 편리하다.
    • 관련전설?: 일본 헤이안(平安)시대(794~1185)의 율령 세칙을 적은『엔기시키(延喜式)』의「진묘쵸(神名帳)」에「?馬?上?郡和多都美神社」로 표기된 신사가 바로 이곳으로 아주 오랜 역사와 유서를 간직한 곳이다.천신(天神)인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와 해신(海神)인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命)를 모신 해궁으로 이들에 얽힌 용궁 전설이 남겨져 있다.
    • 먼 신화 시대에 해신인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豊玉彦尊)가 궁을 지어 와타즈미노미야(海宮)라 이름하였는데 어느날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가 잃어버린 낚시바늘을 찾기위해 이 궁으로 내려왔다가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의 딸 도요타마히메를 만나 결혼하였다고 전해진다.
    • 본전 앞 갯벌에는 이소라에비스라는 이와쿠라(磐座, 신이 거처하는 장소, 주로 바위를 가리킨다)가 있고 신사 뒤편에는 도요타마히메의 분묘가 마련된 성지가 있다. 이곳이 신사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이와쿠라로 추정된다. 도요타마히메는 진주를 신격화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바다의 대모신(大母神)에 해당한다. 이와쿠라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인 갯벌에 위치에 있는 이유는 도요타마히메가 출산 후 아들을 갯벌에 놓아두고 해저 용궁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 문화의 고향
    • 도민에게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문화회관. 최신 시설로 무대를 연출할 수 있는 쓰시마 유일의 공회당으로 문화·체육의 거점시설이다. 세 개의 홀을 중심으로 공원화되어 있다.
    • 개장시간: 09:00∼17: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입장료?: 무료
    • 문의전화?: 81-920-58-1116

관광지 – 미네마치[峰町]

  • 야생조류의 숲(野鳥の森)
    • 야생 조류와 동물의 보호번식과 관찰을 위해 규슈에서 4번째로 만든 시설로, 관찰을 위해 만든 오두막에서는 5,6월경 30종류가 넘는 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 관찰도로도 정비되어 있어 1,600m, 86ha의 숲 속에서 즐겁게 노니는 새들을 볼 수 있다.
  • 오우미노사토(靑海の里)
    • 대한해협의 거친 파도를 배경으로 한 계단식 논밭의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 옛 일본 영화의 촬영지가 되기도 하였다.
  • 엔쓰지(圓通寺)
    • 사카(佐賀)지역은 1397년경부터 소 사다시게(宗 貞茂)에서 사다모리(貞盛), 시게토모(茂職)로 이어지는 3대의 도주가 이 지역에 정착한 이후 많은 무사와 상인들이 몰려들어 무로마치(室町)시대 쓰시마 통치의 중심지로 번창한 곳이다. 엔쓰지는 1408년 7대 번주(藩主)인 소 사다시게가 지은 저택으로 10대 사다쿠니가 이즈하라로 저택을 옮길 때가지 78년간 통치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소 사다모리의 보리사이기도 하며 절 뒤편에는 소(宗)가 일족의 묘지가 있다.
    • 엔쓰지 동조약사여래좌상(銅造藥師如來坐像)?: 약사여래는 중생을 병이나 재난에서 구해 주는 부처로 왼손에는 약병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시무외(施無畏,중생을 보호하여 두려움을 없애는 일)의 인(印, 불상이 손가락 끝으로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상)을 맺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엔쓰지의 동조약사여래좌상 역시 왼손에는 약병을 얹어 무릎 앞에 내밀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모으고 가부좌로 앉아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적당한 크기의 둥그스름한 소용돌이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옷은 목 부분이 크게 벌어져 가슴 밑까지 패여 복부 윗부분에 아래옷과 그것을 묶던 허리띠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옷의 주름은 간소에게 정리되어 있으며 옅은 붉은색을 띄는 도금도 잘 남아 있어 거의 손상이 없는 상태이다. 고려시대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종류의 약사여래상은 쓰시마, 이키, 규슈 북부에서는 유일한 것이며, 한국에도 약사불상은 그 수가 적어, 매우 양호한 보존 상태로 인해 그 가치 면에서 높이 평가된다.
    • 엔쓰지 범종?: 조선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형태는 중국 범종의 영향을 받은 듯하며 장식은 조선 범종의 의장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번주가 사카에 있을 당시, 조선에 요청하여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 가이진신사(海神神社) – 해신신사
    • 가이진신사는 중세에서 근세시대에 이즈하라의 시모쓰하치만구(下津八幡宮)신사에 대비해 가미쓰하치만구(上津八幡宮)신사로 불리었으며, 쓰시마 제일의 신사로 칭해 지기도 하였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신사를 관사( 官社 )라고 하는데, 1871년 5월 관사의 여러 등급 중 하나인 국폐중사(國弊中社)로 지정되어 변함없이 쓰시마 제일신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다의 수호신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命)를 주신으로 모신 해신(海神)신사로, 영산 이즈야마(伊豆山)에 위치하고 있다. 큰 도리이를 지나 높은 돌계단을 오르면 쓰시마 제일의 장대한 본전을 볼 수 있다. 가을 대제는 매년 음력 8월 5일에 봉안되며, 쓰시마 전역에서 참배객들이 모인다. 신사에는 통일신라 초기,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청자 10여점이 남아 있으며, 보물관에는 중요문화재인 통일신라시대 동조여래입상(국가지정중요문화재)을 비롯하여, 동검, 거울, 토기 등이 다수 보존되어 있다.
    • 신사를 둘러싸고 있는 숲(社叢)은 나가사키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구실잣밤나무, 참가시나무 등의 낙엽수를 주목으로 느티나무 등 거목의 울창한 자연림 경관은 신이 거처하는 쓰시마 제일의 궁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삼광조(참새목 까마귀과, 한국에는 흔하지 않지만 제주도, 거제도 등의 섬 지방에는 비교적 흔하다.), 노랑딱새, 산솔새 등 야생 조류도 많이 서식하고 있어 1974년「야생 조류의 숲」으로써 조류 관측을 위한 오두막과 산책로 등을 정비하였다.
  • 미네마치(峰町) 역사 민속 자료관
    • 미네마치에는 죠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유적이 분포되어 있어, 그 시대의 생활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선조가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이 수없이 존재하며 그것을 집약시켜놓은 본 시설은 역사를 배우는 거점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 개장시간: 09:00∼17:00
    • 휴관일: 연말연시
    • 관람료: 무료
    • 문의전화: 81-920-83-0301
  • 기사카오마에(木坂御前) 해변 공원
    • 이 부근에는 캠프장, 야생조류의 숲, 전망대, 오우미노사토가 있어, 미네마치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겨울에는 야생조류 관찰로, 여름에는 캠핑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관광지 – 가미아가타마치[上縣町]

  • 센뵤마키야마(千俵蒔山)
    • 대마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풀로 뒤덮인 산. 보리와 메밀의 씨를 천 섬(千俵;센뵤) 정도 뿌릴 수 있는 웅대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센뵤마키야마로 불리게 되었다. 옛 일본의 수군이 백제의 구원 요청으로 중국 당나라와 싸웠으나 패배한 다음해, 외적의 내습에 대비하여 봉화대를 설치하였는데 센뵤마키야마가 그 기점이 되었다.
  • 異國이 보이는 언덕의 전망대(한국이 보이는 전망대)
    • 센뵤마키야마 근처에 있는 전망대로, 장대한 바다와 고기잡이 배 불빛 등, 기상조건에 따라서는 부산시내의 건물까지 확실히 볼 수 있다.
    • 6월이면 수국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 사오자키(棹崎)공원
    • 부산시와는 불과 49.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기상조건에 따라서는 부산의 산과 아파트 등의 야경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러일전쟁 중 만들어진 대포대와 군시설 등의 자연자원과 역사적 자원을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해 정비된 공원이다. 72ha가 넘는 이 공원에는 쓰시마 야생생물 보호센터와 평화의 광장, 일본 최서단(最西端) 비 등이 있다.
  • 이쿠치하마(井口浜)해수욕장
    • 센뵤마키야마의 끝자락에 위치한 조용한 모래 해수욕장으로, 해변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수심이 깊지 않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 쓰시마골프장
    • 대마도 유일의 골프장으로서 6홀로 만들어져있다.
    • 코스는 오밀조밀해서 재미가 있고 캐디 없이 카트를 이용해야한다.
    • 봄에는 벚꽃과 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 81-920-85-0880
  • 버드워칭(bird watching) 공원
    • 쓰시마는 규슈와 혼슈, 그리고 한국과 중국 대륙을 왕래하는 철새들의 휴식지이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철새 544종 중, 355종을 이 일대에서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사고(佐護) 지역에서는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다수의 야생조류를 볼 수 있다.
  • 조랑말 승마체험장
    • 대마도의 전통말은 우리나라 제주도와 같은 조랑말이다. 간단한 체험코스로써 초보자에서 숙련자까지 이용할수 있다. 요금도 저렴한 편이어서 초보자 코스는 약 30분에 1,000엔 정도.
  • 쓰시마 야생생물 보호센터(사오자키공원 내)
    • 사오자키(棹崎)는 사고(佐護)강의 하류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동식물의 서식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쓰시마 야생생물 보호센터는 쓰시마 야마네코 등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생물의 생태와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야생생물의 보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심화시키기 위한 보급, 계몽활동과 희귀한 야생생물의 보호 증식 사업및 조사 연구를 종합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거점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1997년 개관하였다.
    • 개장시간: 09:00∼16:3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관람료: 무료
    • 문의전화: 81-920-84-5577
    • twcc.cool.ne.jp

관광지 – 가미쯔시마마치[上對馬町]

  • 나루타키
    • 쓰시마는 섬 88%가 산림지역이지만 강은 가파르지 않아 폭포가 적다. 나루타키는 쓰시마 유일의 폭포로 주변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 한국전망대(韓國展望所)
    • 쓰시마 최북단 와니우라의 한국전망대는 한국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로 한국에 훨씬 더 가깝다. 날씨가 좋은 날은 부산시의 거리가 보이는 그야말로「국경의 섬」임을 실감케 하는 곳이다. 전망대 주변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으며 해안 단구의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어 멀리 작은 무인도들이 징검다리처럼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조류가 빠르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 거칠어진다. 전망대 건축물은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1997년에 세워진 것이다. 기와지붕의 팔각정 형태로 서울 파고다 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하였으며, 전망대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에 세워진 문은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것을 모델로 하였다. 설계단계에서부터 한국 학자에게 자문을 구하였으며 한국산 재료 구입 및 전문가 초빙 등 철저히 한국풍을 고집하였다.
  • 아지로(網代)의 연흔
    • 가미쓰시마마치 아지로지역에 해변을 따라 길이 약 200m, 높이 약 15m의 장대한 규모의 울퉁불퉁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이것은 얕은 바다의 잔물결의 흔적이 화석화된 것으로 이를 연흔이라 한다. 태고적 지질시대의 산물이다. 규모도 매우 커 태고의 물결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쓰시마의 지질은 섬 전체가 다이슈(?州)층으로 칭해지는 사암(모래가 물속에 갈아 앉아 굳어서 된 바위)과 혈암(점토가 엉겨 붙어서 된 암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지질층으로 두께는 4,000m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 연흔은 이 다이슈 지질층의 사암 위의 흔적이다. 연흔은 물의 흐름, 기류, 또는 파랑의 작용에 의해 사층의 표면에 형성된 물결 모양의 흔적으로, 모래 입자의 질량, 크기, 형태와 모래를 움직이는 힘의 차이로 인해 수류(水流)연흔, 파도(波)연흔, 풍성(風成)연흔, 간섭(干涉)연흔으로 분류된다. 또 평면 의 모양에 따라 직선 모양, 곡선 모양, 혀 모양, 반달 모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지로의 연흔은 중, 세립 사암에 수류에 의해 형성된 혀 모양 연흔에 해당된다.
  • 조선국역관사순난비(조선역관사위령비, 조선역관사 순난지비)
    • 1703년 음력 2월 5일 아침, 부산항을 출항한 배 3척이 있었다. 정사 한천석(韓天錫), 부사 박세양(朴世亮)을 비롯한 108명의 역관사(통역관) 일행이 탄 사선(使船)과 쓰시마번의 책임자 야마가와 사쿠자에몬(山川 作左衛門)이 방문을 위해 보내준 자신의 배와 예인선이었다. 출항 당시에는 날씨가 좋아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항해를 하고 있었으나 정오가 지난 후 기상이 급변하여 3척 모두 좌초되고 말았다.
    • 쓰시마번과 마을 사람이 구조와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생존자는 1명도 없었다. 도착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와니우라 앞바다에서 전원이 사망하는 비참한 해난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일행 중에는 소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역관사 일행은 조선통신사와는 별도로 쓰시마까지 100명 정도의 규모로 구성되어 파견된 통신사 사절로 에도시대에 50회 이상 일본에 파견되었다. 쓰시마번의 경조사 시, 또는 한일 외교 상 의견 절충이 필요할 때 일본을 방문하여 당시 한일 선린외교의 실질적인 중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 사고 당일은 3대 쓰시마 번주 요시마사의 장례와 5대 번주 요시미치(義方)의 승계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하던 중이었다. 1991년 3월 20일 한일건립위원회가 이국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역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난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한국전망대 바로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 와니우라(鰐浦)의 이팝나무(ヒトツバタゴ)
    • 이팝나무는 높이 15m, 둘레 70cm에 달하는 낙엽목으로 대만과 한국, 중국 대륙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가미쓰시마치의 와니우라 일대와 중부지방의 기소( 木? )강 유역(아이치현愛知?? 이치노미야시一宮市)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5월 경 1.5~2cm의, 꽃잎이 4개로 갈라진 순백의 꽃이 활짝 피어 마치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이 와니우라 만의 바다에 비쳐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1928년 와니우라지구는 이팝나무 자생지로써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팝나무는 현재 쓰시마시(?? 馬市)의 시목이기도 하다.
  • 토요포대
    • 토요지역의 지하벙커로 이루어진 이곳은 1929년 5월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1934년에 완공된것으로서 1922년 1차 세계대전 후 체결된 워싱턴 해군국축 조약에 따라 해체된 항공모함에서 떼어낸 40.6cm 구경의 캐논포 1기 2문이 있던곳이다.
    • 포의 높이가 18.5m이며 무게가 108톤에 달하고 유효사거리가 30km에 달했다.
    • 지하벙커에는 각종 시설물이 자리잡고있어 대마도의 지하요새라 부를만하다. (대형차 진입 불가)

준비물

  • 무형
    • 시간
    • 정신
  • 신분증
    • 여권 (with 사본) – OK
    • 국제운전면허증 (with 사본) – OK
  • 오까네
    • 현금 (환전 필요. 약 OO만원) – OK
    • 국제사용가능한 체크카드 (비상금 입금) – OK
  • 짐틀
    • 배낭 (출입국시 몽땅 넣을 용도) – 노트북용 백팩으로 사용 OK
    • 작은 가방 (이동 시 여권, film, 지갑, 지도 등 잡동사니 수납.) – OK
  • 가리게
    • 바람막이 1, 면티 2, 바지 2, 긴팔 셔츠 1, 속옥과 양말 3세트
  • 깔끔떨기
    • 수건 2, 칫솔(치약), 작은 비누, 손수건
  • 필기도구
    • Mole Skin Weekly – OK
    • plus pen 3, 유성펜(film 표기용) 1자루
    • MacBook (데이터 백업 & 예상외 상황 발생 시 인터넷 사용-테더링) – OK
    • 데이터로밍 무제한 신청
  • 눈도장
    • 1. Leica M6, 35mm Summicron?- OK
    • 2. Still 촬용용 디카 D300s – OK
    • 삼각대 – OK
    • Film?: (slide 6 roll, color nega 6 roll, BW 6 roll) -OK
    • 적외선 프로텍터 – OK
  • 멋내기
    • 사파리 모자 – OK
    • 선그라스 – OK
  • 의약품
    • 진통제
    • 소화제
    • 일회용 밴드와 압박붕대
  • 필수 아이템!!!!!
    • 소주 팩 10개
    • 지도 – OK

카테고리 : 꿈공장, 나름 팁!!!, 뱅기 탄 역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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