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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 카네이시죠, 반쇼인 등 일본 대마도 쓰시마 여행

꿈고미 2026. 1. 30. 21:20

대마호텔

내가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참 단순하다 못해 무식하다. 철길 옆에 집이 있던지, 뭔가 오래된 것이 있다던지... 곧 없어질 것만 같은 것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역사 등에 관해서 공부하거나 알아보는 행위는 깊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맞는다는 것이다. 이번 대마도 여행은 나름 준비하려 했지만, 신뢰성 있는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여행기나 블로그는 주관적이고 잘 못된 정보가 많아서 믿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대마도에 관한 정보는 그마저도 많지 않았다.

대마도에 온 지 벌써 3일째다. 일하지 않고 노는(?)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비는 가랑비같이 변했지만, 아직 바람은 세다.

오늘의 일정

오전은 숙소 근처를 도보로 다닐 예정이다. 오후는 큰 계획 없이 어제 보지 못한 곳을 돌아볼 계획을 세우니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태풍의 영향으로 내일 출항할 수 없다고 호텔로 결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싸!

대마호텔의 조식. 카미소 호텔에 비해 조촐한 느낌.

사진의 큰 테이블 하나와 4인테이블 2개, 앉는 곳이 있고, 창가에 붙은 자리가 있다.
밥과 국 나오기 전

대마호텔의 조식이다. 호텔 2층에 있는 식당 한쪽은 통유리로 돼 밖을 볼 수 있어 거리를 보며 아침 식사를 했다. 구성은 호텔 카미소와 비슷하지만 뭔가 약간씩 소박한 느낌이다. 맛은 깔끔하니 괜찮았다. 대마도의 호텔 조식은 구성이 동일한 듯하다. 나물과 생선, 달걀 등으로 구성한다. 영양을 고려해서일까? 모닝커피는 유료다. 250엔으로 기억하는데 안 먹었다.

이케진자 池神社

대마호텔 뒤쪽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골목으로 가면 바로 이케진자가 있다. 아주 조그만 곳으로 입구를 보면 신사임을 알 수 있다. 한문과 일어로 된 안내판을 보고는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없었다.

골목 중간에 있다.
인형들

골목에 있는 너무 작은 신사이지만 관광지도에 표시한 것을 보니 의미 있는 신사인 듯하다. 다른 신사와 달리 많은 인형이 걸려있다. 위 사진에는 없지만 플래쉬맨 인형도 있었다.

다음 방문지는 ‘대마역사문화박물관’이다. 이케진자에서 나와 十八은행(도저히 한글로 쓸 수가 없...) 쪽으로 나가면 정면에 ‘대마시교류센터’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대마역사문화박물관' 외에도 오늘 계획한 여러 목적지가 몰려있다. 이 대마시교류센터 건물에는 이즈하라 최대 쇼핑몰인 ‘티아라 센터’가 함께 있다. 티아라…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대마역사문화박물관'을 가려 하니, 올라가는 입구에 체인이 걸려있었다. 시간도 10시가 됐음에도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공사 중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금', 바로 덕혜옹주 결혼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비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박물관에 가면 고려문과 성신교린비, 조난자 위령비 등이 있다.

카네이시죠 金石城

카네이시죠가 보인다.
바깥쪽에서 본 성문
성안에서 본 성문. 저 문은 1990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카네이시성의 입구다. 카네이시성은 1669년에 만들어졌다. 내전, 태풍 등으로 많이 상하고 부서졌지만, 정원은 잘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문은 1990년에 복원한 문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은 카네이시성의 남아 있는 성곽입니다.

카네이시성 입구를 들어서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봉축비’가 있다.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 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

크지 않은 비만 보고는 덕혜옹주봉축비인지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비문을 보고서야 덕혜옹주봉축비인 걸 알았다. 부끄럽지만 덕혜옹주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 대마도 여행을 준비하며 처음 알았다.

그래도 누군가 꽃을 가져다 놨다.

가네이시성 정원 金石城庭園

덕혜옹주봉축비 바로 위에 카네이시성 정원이 있다. 하지만 펜스가 처져 있고, 유료 관람이다. 더 슬픈 것은, 오늘 휴관일이다. 펜스 위로 손을 올려 노파인드샷으로 몇 장 찍어봤다.

안내판. 오늘은 휴일이란다.
담장 위로 손을 올려 찍은 모습

일본인의 정원에 연못도 있고, 언덕도 있고... 잘은 모르지만, 그들은 자기 울타리 안에 모든 세상을 갖추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 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들어가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던져버리고, 반쇼인 방향으로 이동했다.

반쇼인 万松院

가네이시성 끝부분에 다다르면 반쇼인이 보인다. 가네이시성의 출구가 반쇼인의 주차장으로 연결돼 있다.

모모야마(1568~1600) 양식으로 1615년 창건된 그대로라고 한다.
매표소

매표소라고 해야 하나? 사진의 저곳에서 300엔을 받는다. 입장료를 내면 양면 인쇄한 B5 크기의 복사물을 한 장 준다. 참 조촐하다. ^^; 하지만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모르는 한문도 넘 많음. -.,-; 옥편이 어딧지???)

본당은 1879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조선국왕으로부터 받았다는 동으로 만든 향로, 화병, 촛대
역대 도주들의묘지로 올라가는 돌계단 입구에 있는 지팡이. 참 친절도 하지...

묘지는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뉘고 상단은 역대 도주와 정부인의 묘석이, 중단에는 첩과 아동, 하단에는 일족과 소오가에서 출가한 사람의 묘석이 있다고 한다.

반쇼인은 19대 대마도주의 아들인 '소오 요시나리'가 아버지 '소오 요시토시'의 명복을 빌며 1615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아버지 '소오 요시토시'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나서야 했지만, 그의 유언은 '조선국과의 평화를 최우선시하라'고 했다고 한다. 처한 입장과 자신의 신념이 달랐었나 보다. 이후 역대 교주들은 큰일이 있을 때마다 '소오 요시토시' 무덤 앞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3그루의 삼나무를 한 번에 잡아봤다. 위는 잘렸지만… 이 삼나무는 천연기념물이란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20그루 정도 있었는데 현재는 3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모두 5.2m~7m의 둘레, 35~40m의 높이로 자랐다. 모두 1600년 이전에 나무로 추정한다.

Posted on 20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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