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를 독주악기로 만든 카살스, 20세기를 지배한 로스트로포비치, 비극의 천재 뒤 프레, 경계를 허문 요요마까지. 첼로 역사를 바꾼 거장들의 이야기를 한 편에 담았다.

첼로의 전설들. 로스트로포비치, 뒤 프레, 요요마 이야기
솔직히 말할게. 이번 편 쓰기 전에 분량 걱정 엄청 했어. 카살스만 해도 한 편 분량이고, 로스트로포비치도 한 편, 뒤 프레도 한 편이거든. 그걸 한 편에 다 욱여넣어야 하는 상황이야.
근데 또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을 한 편에 같이 놓고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 것 같아. 각자가 어떻게 달랐는지, 어떻게 이어졌는지가 같이 봐야 더 선명하게 보이니까. 그러니까 좀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줘. 후회 안 할 거야.
📎 처음 오신 분 → 1편 ~ 7편 먼저 보고 오면 훨씬 풍성하게 읽혀.
🏛️ 거장을 보기 전에 — 기준 하나만 잡고 가자
이 편에서 다룰 첼리스트들은 단순히 "연주를 잘한 사람들"이 아니야. 첼로라는 악기의 역사 자체를 바꾼 사람들이야.
어떤 사람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열었고, 어떤 사람은 연주 방식을 바꿨고, 어떤 사람은 첼로를 대중에게 가져다줬어. 그 기준으로 보면 이 편에 나오는 이름들이 왜 여기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거야. 크게 세 세대로 나눠볼게.
| 1세대 개척자 | 파블로 카살스 | 첼로를 독주악기로 정립 |
| 2세대 거장 | 로스트로포비치, 뒤 프레, 야노스 슈타르커 | 20세기 연주의 기준을 세움 |
| 3세대 현역 | 요요마, 미샤 마이스키, 고티에 카퓌송 등 | 첼로의 영역을 확장 |
👴 파블로 카살스 — 첼로를 독주악기로 만든 남자

(Pablo Casals, 1876~1973)
5편에서 바흐 무반주 모음곡 재발견 이야기를 이미 길게 했으니까, 여기선 카살스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해볼게.
연주 스타일의 혁명
카살스 이전 첼로 연주는 지금과 꽤 달랐어. 당시 유행하던 연주 방식은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는 스타일이었어. 지금 들으면 좀 딱딱하고 밋밋하게 들릴 수 있어. 또 템포도 굉장히 기계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졌거든.
카살스는 이걸 완전히 뒤집었어.
그는 비브라토를 표현의 핵심 도구로 적극 사용했어. 음을 단순히 내는 게 아니라, 비브라토로 감정을 실어서 노래하듯 연주하는 방식이야. 또 자연스러운 루바토(템포의 미세한 유연성) 를 써서 음악이 숨 쉬는 것처럼 들리게 했어. 지금 모든 현악 연주자들이 당연하게 쓰는 이 기법들이 카살스 이전엔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어. 그가 사실상 현대 첼로 연주 스타일의 기반을 만든 거야.
카살스의 활 기법
카살스는 특히 보잉(Bowing, 활 사용법) 에서 혁신적이었어.
그는 활을 현에 접촉하는 각도, 압력, 속도를 극도로 세밀하게 조절했어. 같은 음이라도 활의 접촉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깔이 나온다는 걸 체계적으로 탐구한 첫 번째 첼리스트에 가까워.
지금 첼로 교육에서 가르치는 기본 보잉 원칙들 상당수가 카살스에게서 출발했어.
카살스 말년의 평화 운동
7편에서 카살스가 프랑코 정권에 저항해 10년간 공개 연주를 거부했다는 얘기를 했지. 그 이후 카살스는 음악을 평화의 언어로 쓰기 시작했어.
그가 직접 작곡한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 는 카탈루냐 민요를 편곡한 짧은 첼로 소품인데, 카살스가 연주회나 연설 말미에 항상 이 곡을 연주하며 고향 카탈루냐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았어.
1971년 유엔 평화 메달 수상 후 연주한 이 곡 영상이 남아있어. 아흔넷의 노인이 첼로를 들고 연주하는 그 영상, 한 번 찾아봐. 음악이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영상이야.
카살스는 1973년 9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첼로를 놓지 않았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향 카탈루냐를 밟지 못했어. 프랑코가 1975년에 죽었으니까, 카살스는 결국 2년 차이로 고향 땅을 못 밟은 거야. (그게 또 너무 마음이 아파)
🎸 야노스 슈타르커. 완벽주의자의 첼로
(János Starker, 1924~2013)

로스트로포비치 얘기 전에 슈타르커를 먼저 해야 해. 이 두 사람이 20세기 중반 첼로계의 양대 산맥이었거든. 슈타르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이야. 어린 시절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고,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헝가리를 떠나 결국 미국에 정착했어.
슈타르커의 첼로 — 이성과 설계의 음악
슈타르커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완벽주의" 야.
그의 연주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야. 근데 그 감정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설계된 방식으로 표현돼. 즉흥적인 감정 폭발 같은 건 없어. 모든 음, 모든 프레이징, 모든 다이나믹이 치밀하게 계산된 결과야. 지금도 슈타르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녹음(1963년, 1992년)은 기술적 완벽함의 기준으로 꼽혀. 특히 1963년 녹음은 그래미상을 받았어.
카살스의 연주가 감정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라면, 슈타르커의 연주는 정밀하게 설계된 건축물 같아. 어느 게 더 좋냐는 취향 문제지만, 둘 다 위대하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어.
교육자로서의 슈타르커
슈타르커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에서 수십 년간 가르쳤어. 그의 제자들이 지금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음악원에 퍼져있어. 교육자로서의 영향력도 연주자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아.
첼로 주법에 관한 그의 저작들도 교육 현장에서 지금도 쓰여. 슈타르커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수많은 첼리스트들의 소리가 달랐을 거야.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Mstislav Rostropovich, 1927~2007)

"슬라바(Slava)"라는 애칭으로 불렸어. 러시아어로 "영광"이라는 뜻이야. 이름부터가 운명이었나봐.
로스트로포비치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을 늘어놓으면 끝이 없어.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레퍼토리의 창조자, 자유의 투사, 지휘자, 피아니스트... 이 사람 하나가 클래식 음악 역사 한 챕터야.
레퍼토리를 창조한 연주자
7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로스트로포비치가 첼로 음악에 한 가장 위대한 공헌은 새로운 작품을 직접 만들어낸 것이야.
그가 작곡가들에게 의뢰하거나 헌정받은 작품 목록을 보면 기절해:
|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1번, 2번 |
| 프로코피에프 | 교향적 협주곡 (개정 공동 작업) |
| 브리튼 | 첼로 교향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3곡, 소나타 |
| 루토스와프스키 | 첼로 협주곡 |
| 뒤티외 | 첼로 협주곡 "열린 나선" |
| 샤브리에 | 첼로 소나타 |
| 피아졸라 | 르 그랑 탱고 (로스트로포비치 헌정) |
이 목록이 지금 첼로 레퍼토리의 핵심이야. 로스트로포비치가 없었다면 이 곡들이 존재하지 않았어. 연주자가 레퍼토리를 창조한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케이스야.
연주 스타일 — 에너지의 화신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특징이야.
무대에 오르면 그냥 존재감부터가 달라. 거구의 체격, 활을 쓸 때의 호방한 제스처,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는 표정 — 연주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야.
음색은 풍부하고 깊어. 특히 저음역에서 나오는 그 우렁찬 소리는 로스트로포비치만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을 악보 받고 4일 만에 외워서 초연했다는 전설은 진짜야. 쇼스타코비치 본인이 "내가 꿈꾸던 것보다 더 완벽한 연주였다"고 했을 정도야.
솔제니친 사건과 망명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소련 당국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어.
로스트로포비치는 솔제니친을 자신의 집에 4년간 숨겨줬어.
소련에서 이건 목숨을 건 행동이야.
결국 로스트로포비치는 소련 당국의 표적이 됐어. 연주 기회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해외 출국도 제한됐어. 1974년, 로스트로포비치와 그의 아내(소프라노 갈리나 비슈넵스카야)는 소련을 떠나 사실상 망명했어.
1978년에는 소련 시민권이 박탈됐어.
베를린 장벽 붕괴 당일 — 역사 속의 첼로
1989년 11월 11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 날.
로스트로포비치는 아무 예고도 없이 베를린으로 날아갔어. 그리고 무너진 장벽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어.
망토 하나 걸치고, 밤 공기 속에서, 역사가 바뀐 자리에서.
그 장면 사진이 남아있어.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야.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공식 행사도 아니야. 그냥 그 순간 거기 있고 싶었던 거야.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
소련 붕괴 이후
1990년, 고르바초프가 시민권을 회복시켜줬어. 로스트로포비치는 16년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았어.
이후 그는 워싱턴 국립 심포니 음악 감독을 지내며 지휘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했어.
2007년 4월 27일, 로스트로포비치는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에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도 직접 왔어. 국가가 한때 시민권을 빼앗았던 사람의 장례식에 온 거야. 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나 이런 식이야.
💔 재클린 뒤 프레 — 다시, 더 천천히
(Jacqueline du Pré, 1945~1987)
7편에서 이미 뒤 프레 얘기를 했는데, 8편에서 연주자로서의 뒤 프레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게.
연주 스타일 — 제어되지 않는 불꽃
카살스가 감정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라면, 슈타르커가 이성으로 음악을 조각한 사람이라면, 뒤 프레는 감정 그 자체가 연주가 된 사람이야.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보면 몸 전체가 음악이야. 활이 현을 그을 때 온몸이 함께 움직이고, 피아니시모에서는 숨소리까지 멈출 것 같고, 포르테에서는 폭발하는 것 같아.
이게 단순히 과장된 제스처가 아니야. 소리가 달라. 그 몸짓 하나하나가 실제로 음색과 표현에 영향을 주는 거거든.
어떤 비평가는 이렇게 표현했어.
"다른 연주자들은 첼로를 연주한다. 뒤 프레는 첼로가 된다."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
뒤 프레가 사용했던 첼로가 바로 2편에서 잠깐 언급한 "다비도프(Davidov)" 스트라디바리야. 1712년 제작, 스트라디바리의 전성기 작품이야.
이름도 없던 악기가 스트라디바리를 만나기까지 - 첼로 역사 2편
'비올론첼로'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16~17세기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첼로의 원형, 그리고 스트라디바리·아마티·과르네리 전설 장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봤다.이름도 모양도 없던
seravi.net
이 악기의 이름은 러시아 첼리스트 카를 다비도프(Karl Davidoff) 에서 왔어. 19세기 러시아 최고의 첼리스트였고, 차이콥스키에게 첼로 작품 작곡을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해.
다비도프 → 뒤 프레 → 요요마 순으로 악기가 전해졌어.
뒤 프레가 연주를 그만둔 후, 이 악기는 요요마에게 대여됐어. 지금은 스트라디바리 소사이어티(Stradivari Society)가 소유하고, 요요마가 사용 중이야.
같은 악기를 뒤 프레와 요요마가 함께 썼다는 것, 생각해보면 뭔가 묘한 연결감이 있어.
"유리창 뒤에서"
뒤 프레가 연주를 그만둔 이후, 그녀의 삶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
병이 진행되면서 그녀는 점점 외부 세계와 단절됐어. 1980년대에 BBC에서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인터뷰에서 뒤 프레는 이렇게 말했어.
"음악은 여전히 내 안에 있어요. 다만 이제 밖으로 나오질 못할 뿐이에요."
이 말이 너무 오래 머릿속에 남아.
1987년, 마흔두 살에 세상을 떠났어. 그녀가 연주할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10년 남짓이야. 근데 그 10년이 첼로 역사에 영원히 남았어.
🌏 요요마 — 경계를 허문 첼리스트
(Yo-Yo Ma, 1955~ )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네 살에 첼로를 시작했고, 일곱 살에 카살스 앞에서 연주했어. (카살스가 직접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어) 줄리아드를 거쳐 하버드를 졸업했어. 첼로 한다고 하버드를 포기 안 한 거야. 둘 다 한 거야. (뭐야 이 사람)
클래식에서 출발한 크로스오버의 대가
요요마는 클래식 연주자로서 이미 최정상이야.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세 번 녹음했고, 드보르자크, 엘가,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모두 기준 음반으로 꼽히는 녹음을 갖고 있어.
근데 요요마가 특별한 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거야.
그가 걸어간 크로스오버의 발자취를 보면:
| 아스토르 피아졸라 | 탱고 음악 앨범 "Soul of the Tango" |
| 실크로드 앙상블 | 동서양 전통음악 융합 프로젝트, 2000년 창단 |
| 애팔래치아 왈츠 | 미국 민속음악 첼리스트 에드가 마이어와 협업 |
| 에니오 모리코네 | 영화음악 앨범 |
| 바흐 프로젝트 | 바흐 모음곡 6곡을 6개 도시에서 6가지 예술 형식과 결합한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
실크로드 앙상블은 요요마의 가장 큰 프로젝트야.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미국의 음악가들이 모여 각자의 전통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섞는 거야. 단순한 세계음악 축제가 아니라, 문화 간 대화로서의 음악이라는 개념을 실천한 거야.
공항 분실 사건 — 전설의 에피소드
요요마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어.
1999년 10월, 뉴욕.
요요마가 택시를 타고 공연장에 갔어. 그리고 내리면서 트렁크에 첼로를 두고 내렸어. 그 첼로가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야. 보험가만 해도 수백만 달러짜리.
다행히 뉴욕 경찰이 택시를 찾아서 악기를 회수했어. 요요마는 택시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직접 전했다고 해.
(이 에피소드가 유명한 이유는 요요마가 그 전에도 악기를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 천재들은 딴 생각하느라 바쁜가봐)
요요마의 음악 철학
요요마가 인터뷰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어.
"음악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의 커리어 전체가 이 문장을 실천하는 과정이야. 클래식이든 탱고든 민속음악이든, 요요마한테는 전부 같은 언어야.
🎭 미샤 마이스키 — 낭만의 화신
(Mischa Maisky, 1948~ )

라트비아 출신, 현재 벨기에 국적. 슈타르커와 로스트로포비치, 두 거장 모두에게 배운 독특한 이력을 가진 첼리스트야.
마이스키의 연주는 낭만적이고 감성적이야. 슈타르커의 이성적 완벽함이나 로스트로포비치의 폭발적 에너지와는 또 다른 색깔이야. 따뜻하고 노래하듯 흐르는 음색,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연주.
바흐 무반주 모음곡 녹음(1985년, 1999년)은 일반 대중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가는 버전으로 꼽혀. 클래식 입문자한테 바흐 모음곡을 처음 추천할 때 마이스키 버전을 드는 사람이 많아.
외모도 좀 독특해. 언제나 긴 머리에 화려한 의상을 즐기는데, 무대 위에서도 개성이 넘쳐. 첼리스트들이 대개 무대 위에서 단정하게 입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마이스키에게도 어두운 역사가 있어. 소련 시절 반체제 인물로 찍혀서 노동 수용소에 18개월간 수감됐어. 그 경험이 그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그냥 그의 연주를 들으면 알 것 같아.
🇫🇷 고티에 카퓌송 — 프랑스의 우아함
(Gautier Capuçon, 1981~ )
프랑스 출신의 현역 첼리스트. 형 르노 카퓌송(Renaud Capuçon)은 바이올리니스트인데, 형제가 둘 다 세계적 연주자야. (유전자가 뭔가 다른가봐)
고티에는 1701년제 마테우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 첼로를 사용해. 스트라디바리는 아니지만 베네치아의 전설적인 장인 고프릴러의 작품이야. 이 악기도 억 소리 나는 가격이야.
연주 스타일은 프랑스 전통답게 세련되고 우아해. 지성과 감성이 균형 잡혀있고, 음색이 맑고 투명해. 드보르자크나 생상스 같은 레퍼토리에서 특히 빛나.
현역 첼리스트 중 음반 활동, 연주 활동 모두 가장 활발한 사람 중 하나야.
🌟 그 외 꼭 알아야 할 현역 첼리스트들
거장 열전이니까 좀 더 추가할게.
스티븐 이설리스(Steven Isserlis) — 영국 출신. 원전악기와 모던 악기를 넘나들며 연구자적 태도로 음악에 접근해. 바흐 해석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어.
알반 게르하르트(Alban Gerhardt) — 독일 출신. 현대음악에 특히 강해. 잘 알려지지 않은 20세기 작품들을 발굴하는 역할도 해.
졸탄 코치쉬 같은 피아니스트와 협업한 막달레나 코제나 의 파트너로도 알려진 크리스티안 포흘레 —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실내악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이야.
세바스티안 클링거(Sebastian Klinger) — 알반 베르크 콰르텟 이후 세대 실내악의 핵심.
한국 출신으로는 한재민 이 최근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어.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야. 한국 첼로의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는 신호야.
🎯 거장들의 스타일 비교 — 한눈에 정리
| 카살스 | 따뜻함, 서사, 인간적 | 바흐 무반주 모음곡 | 바흐 모음곡 (1936~39) |
| 슈타르커 | 정밀함, 이성, 건축적 | 바흐 모음곡, 코다이 | 바흐 모음곡 (1963) |
| 로스트로포비치 | 폭발적 에너지, 호방함 | 쇼스타코비치, 드보르자크 |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번 |
| 뒤 프레 | 불꽃, 직관, 전신 몰입 | 엘가, 드보르자크 | 엘가 협주곡 (1965) |
| 요요마 | 균형, 개방성, 대화 | 바흐, 드보르자크, 피아졸라 | 바흐 모음곡 (1994) |
| 마이스키 | 낭만, 노래, 따뜻함 | 바흐, 슈만, 브람스 | 바흐 모음곡 (1999) |
| 카퓌송 | 우아함, 세련됨, 균형 | 드보르자크, 생상스 | 드보르자크 협주곡 |
📌 8편 핵심 정리
- 카살스 = 비브라토와 루바토로 현대 첼로 연주 스타일의 기반을 만든 사람
- 슈타르커 = 완벽주의적 정밀함, 교육자로도 수십 년 영향력 행사
- 로스트로포비치 = 새 레퍼토리를 직접 만들어낸 연주자, 베를린 장벽 앞에서 바흐를 연주한 사람
- 재클린 뒤 프레 = 10년의 커리어로 첼로 역사에 영원히 남은 이름
-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 는 뒤 프레 → 요요마로 이어진 전설의 악기
- 요요마 = 클래식의 경계를 허물고 실크로드 앙상블로 음악의 언어를 확장
- 마이스키 = 수용소 경험을 넘어선 낭만의 화신
- 한재민 =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한국 첼로의 세계적 위상을 보여줌
🎬 마무리 — 9편 예고
거장들 얘기를 하고 나니까, 이제 이 시리즈도 막바지에 왔어.
9편은 첼로 명곡 플레이리스트야. 이 연재를 처음부터 읽은 사람이라면 이미 수십 곡의 이름을 들었을 텐데, 그걸 다 정리해서 "어디서부터 들을지 모르겠다"는 사람을 위한 완벽한 가이드를 만들어볼 거야.
클래식 입문자용 첼로 베스트, 감성 폭발 명연주 추천, 장르별 첫 곡 추천까지. 이 연재 읽고 나서 아무것도 못 들으면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보너스편으로 "첼로 사도 될까 — 입문자 현실 가이드"도 준비하고 있어. 악기 살 때 현실적으로 뭘 봐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독학이 가능한지 솔직하게 써볼게.
📎 9편 바로 이어서 보기
2026.03.21 - [Auf Flügeln der Musik] - 클래식 몰라도 빠져드는 첼로 명곡 베스트. 장르별 완전 정리 - 첼로 역사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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