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산 자락에 자리한 회현시범아파트는 1970년 준공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견뎌온 한국 아파트 역사의 살아있는 증언입니다.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부실시공 근절의 의지로 탄생한 이 건물은 오늘날 철거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단독주택과 아파트 생활양식이 교차하는 독특한 공간 구조,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진 이곳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고 있을까요.

1970년 준공된 회현시범아파트의 탄생 배경
회현시범아파트는 원래 '회현제2시민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준공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 입주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와우시민아파트 한 동이 무너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 사고는 당시 서울시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서울시는 이후 모든 아파트 건설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회현제2시민아파트를 '회현시범아파트'로 이름을 변경하며 "이곳을 시범으로 튼튼히 지으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부실시공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당시 서울시의 굳은 의지가 담긴 명명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이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한국 건축 안전의 전환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버텨온 이 건물은 당시의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튼튼함만으로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하는 주거 환경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2007년부터 이미 철거 결정이 나왔고, 그 이후 서울시의 인수나 지원을 통한 문화공간 전환 논의도 있었으나 결국 2025년 철거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부실시공 근절의 상징으로 시작된 이곳이 오랜 시간으로 인해 낡고 낯설게 변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요즘 아파트와 확연히 다른 낡은 구조적 특징
회현시범아파트를 직접 방문해보면 현대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복도 양쪽으로 집이 있는 구조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편한 생활 공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층을 계단으로만 오르내려야 하는 구조는 고령 주민들에게는 큰 불편함이었을 것입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복도는 상시 전등을 켜고 있어야 합니다. 2007년 9월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점은 복도 전체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워서 음침한 느낌까지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이곳은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익숙치 않은 모습, 현재 아파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오히려 영화적 배경으로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많은 집의 현관문은 처음 준공 때의 나무 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문을 사용한다는 것은 주민들의 애착과 동시에 개보수의 어려움을 반영합니다. 아파트 위쪽으로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면 아파트 중간과 연결된 다리를 통해서 아파트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이는 당시 설계자들이 나름의 편의성을 고려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요즘 아파트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공간도 존재합니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공간은 여러 종류의 풀과 나무가 있는 화단으로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 항아리를 묻어 놓거나 세워놨는데, 이는 마당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독주택 생활과 아파트 생활이 오묘하게 엮여있는 모습입니다. 중앙 정원은 아니지만 화단과 항아리가 어울린 공간은 1970년대 한국인들이 아파트 생활에 적응하면서도 전통적 주거문화를 유지하려 했던 노력의 흔적입니다.

철거 결정과 보존 가능성에 대한 고찰
2007년 9월 처음 방문했을 때 이미 철거 결정이 나고 몇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당시에도 입구에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카메라를 멘 상태로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꾸뻑 묵례하며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행히 화를 내거나 말을 건 주민은 없었지만,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방문할 때마다 더욱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져서 아파트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겉만 찍고 왔습니다.
2021년 11월 마지막 방문 당시에는 서울시에서 인수 또는 지원, 안전 보강과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2025년 철거로 최종 결정이 났습니다. 과연 철거밖에 방안이 없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한 건물의 운명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역사적 건축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낡은 외형과 구조, 접근 편의성 등을 보면 요즈음 다른 아파트에 비해서 불편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살고 있는 주민들도 실제로 불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우리나라 초기의 아파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단독주택에 비해 상하수도와 도시가스 이용, 택배 받기 등에서 편한 점이 많은 현대 아파트와 달리, 이곳은 과도기적 주거 형태를 보여줍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8길 101에 위치한 이 건물은 단순한 노후 건축물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증언자입니다. 피아노학원과 상회 건물이 카페 건물로 변화하는 등 주변 환경은 계속 변화해왔습니다. 하지만 회현시범아파트만큼은 1970년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 있었습니다. 재건축을 통한 주거 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일부 동이라도 보존하여 건축 박물관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서울시에서 착공했을 때부터 재건축 얘기가 나오는 현재까지의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부실시공 근절의 상징으로 시작해 반세기를 견뎌낸 건물이 결국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은 숙명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회현시범아파트는 단순한 낡은 건물이 아니라 한국 주거문화 변천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입니다. 와우시민아파트 붕괴라는 비극에서 탄생해 튼튼함으로 반세기를 버텨온 이곳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우리에게 건축 안전과 주거 문화, 그리고 역사 보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기고 있습니다. 철거 이전에 체계적인 기록 작업이라도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러한 역사적 건축물들이 단순히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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