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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 Asia

대마도 여행 마지막 날 (슈젠지 최익현비, 이즈하라 골목, 다이슈안 우동)

by 꿈고미 2026. 2. 5.

일본 대마도(쓰시마), 최익현선생 순국비가 있는 슈젠지 방문과 이즈하라 골목

태풍으로 인해 예정보다 하루 더 머물게 된 대마도 여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쫓기듯 보냈던 초반과 달리, 연장된 시간 덕분에 여유롭게 이즈하라 골목을 거닐며 현지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즈하라 골목에서
이즈하라 골목에서

조식 후 슈젠지에서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참배하고, T/ARA 쇼핑센터의 다이슈안에서 우동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부산행 배에 올랐습니다. 마지막까지 대마도의 고요함과 일본 특유의 여유로움을 체험한 특별한 여정이었습니다.

슈젠지 최익현 선생 순국비와 역사적 의미

슈젠지修善寺는 백제의 비구니인 법묘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한일 양국의 역사가 교차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최익현 선생은 쓰시마에 유배되어 1906년 8월 28일 이즈하라로 호송되었고, 임병찬과 함께 하치만구신사八幡宮 神社 남쪽에 위치한 제사전습소製糸伝習所에 수용되었습니다.

대마도 슈젠지(修善寺) 입구
슈젠지(修善寺) 입구

임병찬의 「대마도일기対馬島日記」에 따르면 최익현 선생은 12월 4일 발병 기록이 보이며, 쓰시마경비대에서 사람을 붙여 간호했으나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에서 치러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슈젠지에 비를 세웠습니다.

최익현 선생 순국비
최익현 선생 순국비

쓰시마 호텔과 이즈하라 항 중간에 위치한 슈젠지는 찾기 어렵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강한 햇살이 내리쳐 가을이 아닌 여름 날씨 같았습니다. 경내에는 많은 비석과 조그만 상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작은 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역사의 흔적임은 분명했습니다. 현지 언어를 할 수 있었다면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 물어볼 수조차 없었던 고요한 아침이었습니다.

이즈하라 골목길과 대마도의 일상 풍경

슈젠지를 나와 점심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천천히 이즈하라의 골목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어제와는 다른 거리 풍경이 펼쳐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들이 연속되었습니다. 골목을 걷다가 오토시진자大歳神社라는 신사도 만났는데, 대마도를 여행하면서 사람보다 많이 본 것이 바로 신사와 미용실이었습니다.

오토시진자 大歳神社
오토시진자 大歳神社

특히 미용실은 정말 많았습니다. 대마도 전역에 엄청난 수의 미용실이 운영 중이라는 점이 놀라웠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대다수는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지 않고 아주머니들끼리 차를 마시거나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이 아주머니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보면 미용실이 과연 필요할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T/ARA 쇼핑몰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이즈하라의 골목을 돌아다니며 느낀 것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조용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주친 사람의 수가 워낙 적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평일 오전 출근 시간에도 사람이 너무 없었고, 그나마 이즈하라에서는 조금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좋지 않았던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시골도 비슷하게 사람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웃으며 목례하고 다녔습니다.

다이슈안 우동집과 부산행 귀로

T/ARA 쇼핑센터 1층에 위치한 다이슈안 対州庵은 블로그에 많이 등장하는 음식점으로, 방문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이 괜찮아서 선택한 곳입니다. 입구에는 한글 인사말이 적혀 있었고 메뉴판도 한글로 준비되어 있어, 일본어를 못해도 주문하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마도에서 이 정도 크기면 작은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카운터석, 벽면석, 테이블 등 자리가 꽤 있는 편이었고, 메뉴는 너무 다양해서 마치 김밥천국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이슈안 対州庵

벽면석에 자리를 잡고 새우우동과 유부초밥을 주문했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바로 손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있었고, 재떨이도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담배를 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벽면 한쪽에는 엄청 오래되었다는 의미의 표시가 있어 이 집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반가워 재털이. 아직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담배를 필 수 있다.
반가워 재털이. 아직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담배를 필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이즈하라 항으로 향했습니다. 1시까지 와서 출국 수속을 해달라는 안내를 받았기에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날씨는 맑게 개어 있었는데, 돌아가려 하니 하늘이 맑아진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부산으로 갈 배는 올 때 타고 왔던 Sea Flower II호였습니다. 출국 수속 전 주변을 둘러보며 빨간 등대와 이즈하라 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 승선 인원이 단 2명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올 때는 5~6명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귀로는 매우 한산했습니다. 함께 탄 승객은 대마도 여행기 1편의 동영상 속에서 엄청난 풍랑 속에서도 미동 없이 앉아 있던 그분이었습니다.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다가와 몇 마디 나누었는데, 자신은 한국계 영국인으로 어려서 영국 가정에 입양되어 자란 후 부모님의 나라를 알고 싶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입출국 일정은 저와 동일했지만 대마도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마도에 들어갈 때 함께 탔던 사람을 나올 때도 봤다. 손님은 우리 두명 뿐이었다.

배는 예정과 달리 15시가 되어서야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멀미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출항 후 10여 분도 되지 않아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신호가 왔고 몇 차례 화장실을 다녀오니 승무원분과 면세점 아주머니께서 복도에 이불을 펴주시며 누워서 가라고 권하셨습니다. 누워도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았고, 물 위라서 무서웠으며 멀미로 힘든 기나긴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야 했습니다.

내가 본 부산으로 돌아오는 배 안 모습. 이 모습만 보다 내렸다.

대마도 여행을 정리하며 머리와 마음에 남는 느낌은 '고요'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했고, 마주친 사람의 수가 워낙 적어 더욱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대마도는 약 88% 가량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동할 때마다 산길을 다녀야 했고, 양옆으로 곧고 크게 자란 나무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거제도의 반 정도 크기인 대마도는 모든 것이 작고 아기자기했습니다. 공원도, 전망대도, 해수욕장도 작았지만 그 속에서 일본 특유의 여유로움과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하루 더 묶이면서 계획에 없던 슈젠지 방문과 이즈하라 골목 산책이 가능했고, 다이슈안에서의 마지막 식사까지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작성일: 20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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